정조대왕의 효심과 한국적 리더십
김종두(효학박사, 한효총 사무총장)
조선시대의 27명의 임금 중에서 현군(賢君)을 고르라면 조선 초기에는 세종(世宗), 후기에는 정조(正祖)를 꼽는다. 그리고 두 임금은 효치(孝治)를 중시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세종은 재위 10년(1428) 경남 진주의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보고를 받고 “죄를 지은 백성보다 글을 알게 하지 못한 짐의 책임이 더 무겁다.”면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발행해 백성에게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로 가르쳤고, 재위 25년(1443)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백성을 널리 깨우쳤을 정도를 효치와 애민을 중시했다. 그리고 정조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뒤주 안에서 8일 동안이나 목마름과 배고픔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목격하고 나서도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효심에 기초한 정사를 폈다.
이렇듯 같은 현군일지라도 세종과 정조의 즉위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방원)의 비호아래 순탄하게 왕위를 계승한 반면, 정조는 임오화변이 말해주듯이 논론 측의 계속된 방해로 매우 어렵게 왕위에 올랐다. 당시 노론 세력은 “세손은 세 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는 ‘삼불필지설(三不必知說)’과 “죄인의 아들은 군왕이 될 수 없다.”는 ‘8자흉언[罪人之子不爲君王]’ 등을 퍼뜨려 집요하게 왕위 계승을 막았던 터였다. 그럼에도 정조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일성과 함께 25세에 조선의 22대 왕에 올랐다. 하지만 즉위 원년에만 일곱 차례나 침전에 자객이 들 정도로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사도(思悼)세자를 장헌(莊獻)세자로, 수은묘(垂恩墓)를 영우원(永祐園)으로 높였고, 영우원에서 현륭원(顯隆園)으로 천장(遷葬)을 단행했다. 특히 화성시의 최루백(崔婁伯) 효자비와 인근한 곳에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효촌(孝村)이라는 지명을 하사했는데, 이는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죽여서 원수를 갚았다.”는 최루백의 효심이 정조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효 사찰인 용주사를 건립하고 아버지 산소 옆에, 어진(御眞)을 위치시켰으며, 봉수당에서 어머니 회갑연을 열어 드려 효심을 다했다.
한국적 리더십은 한국 사회에 알맞으면서 우리 민족의 특징이 담긴 리더십을 말한다. 그 중에는 효에 기반한 리더십이 포함되는데. 리더십에는 ‘문화적 상대성(cultural relativity)’이 존재하는 관계로 문화의 영향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에서 타 문화권에서 개발된 리더십 이론을 적용할 때는 자문화적 측면을 감안해서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 동안 서구의 리더십 이론에 대해 지나치게 일반화 시켜 받아들인 것에 대한 반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하여 『리더십의 한국학』의 저자인 이규태(1903~2006)는 ‘남귤북지(南橘北枳)’, 즉 “강남에 있는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귤이 아니라 탱자가 열린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적 리더십의 필요성을 제기한바 있다.
우리와 문화가 다른 서양에서, 기업의 이윤창출을 목표로 발전시킨 리더십 이론을 여과 없이 적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본디 리더십은 ‘리더 ․ 팔로어 ․ 상황요인’이라는 구성요소의 역동적 관계를 통해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인간이 태어나 세상을 접하면서 부모형제와 마주치게 되는 한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가정의 리더인 ‘부모’, 팔로어인 ‘자녀’, 부모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요인’ 등이 모두 문화의 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는 점이다.
효는 한국인에게 독특하게 존재하는 보편적이면서 이타적 가치이다. 가족사랑과 가정윤리, 세대공감 등으로 해석되는 효는, 각각의 인격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정에서 형제자매가 어우러져 밀고 당기는 과정 속에서 몸에 밴 인간관계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서 영향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효라는 가치이고, 동심원(同心圓)과 친친애인(親親愛人)의 작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맹자』에 “자기 집 노인을 공경하여서 그 마음의 다른 집 노인을 공경하는데 까지 미치게 하고, 자기 집 어린이를 사랑하여서 그 마음의 다른 집 어린이를 사랑하는 데까지 미치게 한다. 이렇게 마음을 쓴다면 천하를 쉽게 다스릴 수 있다(老吾老以及人之老 幼吾幼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고 하였다. 진정 리더십에서 효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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