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실천(1) : ‘大孝尊親 其次不辱’

김종두(한효총 사무총장, 전 국방대/경민대,성산효대학원 교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는 것만큼의 슬픔은 많지 않다. 정조는 세손이던 11살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에 의해 8일 동안이나 뒤주에 갇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던 세손에 대해 영조는 “저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했고, 사도세자는 그 광경을 보며 “그 아이의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장차 왕이 될 사람이다.”라며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맞았다. 세손은 어린 나이에도 이 모든 것이 노론세력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알았고 “선을 지키고 악을 막는 것이 공경이다(陳善閉邪謂之敬)”라는 친필이 지금도 전해진다. 홍인한과 구선복 등 노론측 신하들의 사악함을 지적한 것이다.

정조는 아버지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영조의 편벽(偏僻)이 심해지면서 아버지의 의대증(衣帶症) 질환도 깊어졌는데, 그전까지는 그랬다. 효는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11살에 아버지가 28세에 억울하게 요절(夭折)했기 때문에 섬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된 이후 백성에게 선정(善政)을 펼치는 것이 아버지께 효를 다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오명(汚名)을 벗겨 드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정조가 보여준 효는 ‘대효존친(大孝尊親) 기차불욕(其次不辱)’과 ‘계지술사(繼志述事)’의 효가 가장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대효존친’과 ‘기차불욕’의 효는 『예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가장 큰 효는 부모님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부모님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라고 되어있다. 정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을 크게 존중했고,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했음을 볼 수 있는데, 다름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갑신(甲申)처분’에서 보여준 세손 시절의 효이다. 이는 영조의 지시로 갑신년(甲申年)에 세손을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아들로 입적하던 때의 효심을 뜻한다. 이때는 상중(喪中)이었다. 대상(大喪)과 담제(禫祭) 등을 치르지 않은채 양자로 입적되면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 대한 불효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나타난다.

둘째, ‘즉위윤음(卽位綸音)과 존호(尊號)’에 나타난 효이다. ‘즉위윤음’은 조선의 22대 임금으로 즉위(1776.3.10)하면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러나 선대왕깨서 종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으니 근본이 둘일 수는 없다(寡人思悼世子之子也. 先大王爲宗統之重 令予嗣孝章世子 不貳本之)라는 입장과 함께 존호를 ‘사도(思悼)’에서 ‘장헌(莊獻)’으로 바꾼 것을 말하는데, ‘장헌’은 ”엄중하고도 바른[莊]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 드린다[獻].“는 의미로 아버지 명예회복을 위해 애쓰는 내용이다.

셋째, ‘어진봉안(御眞奉安)’을 통한 효행이다. 어진봉안은 1789년(정조13, 38세)에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하고 재실(齋室)에 자신의 사진을 봉안(奉安)한 일이다. 이는 불명예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임금이 곁에서 모시는 ‘원(園)’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효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조가 본 아버지(사도세자)는 대단한 효자였다는 사실이, 다산이 기록한 ‘자찬묘지명’과 ‘이가환묘지명’에 나타나 있다.

넷째, ‘영괴대(靈槐臺)’라는 친필을 하사함으로써 아버지의 명예를 높여드린 효이다. 영괴(靈槐)는 ‘신령한 회화나무’라는 뜻이다. “이곳은 아버지가 활을 쏘시던 곳이다.”라며, 자신의 마음을 나타낸 이름으로, 지금도 충남 아산의 온양관광호텔 경내에 보존돼 있다. 아버지가 세자이던 시절에 온양을 방문했을 때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곳을 표시하고 당시 아버지께서 국가안보를 걱정하면서 무인 육성을 중시했음을 알리기 위해 1795년(44세, 정조19)에 세운 것이다.

다섯째, ‘현륭원 조성’과 ‘용주사 창건’을 통해 아버지를 위로해드리는 효이다. 정조가 현륭원을 조성한 것은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백성을 잘살게 해야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정조는 즉위 1년 전(1775년, 24세)에 영조에게 허락받아 아버지가 묻혀있는 양주 배봉산의 수은묘를 처음으로 전배(展拜)했는데, 이때 묫자리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묫자리를 물색하던 중 1788년(37세, 정조13)에 화성일대를 둘러 보며 최루백의 효행을 듣고 “최루백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다.”라며 그 일대를 ‘효촌(孝村)’이라는 지명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1789(38세, 정조14)년에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묘를 화성으로 이장(移葬)하여 현륭원을 조성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조는 영상 채제공에게 “내가 죽으면 아버지 곁에 묻어주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이듬해인 1790년(39세, 정조15)에 용주사(龍珠寺)를 창건하여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해드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