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have created a awesome theme
Far far away,behind the word mountains, far from the countries

함께하는 효칼럼 > 효(HYO)칼럼

효(HYO)칼럼

제목 [ 0062 ]효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작성자 최성규
작성일자 2022-12-12





효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최성규(성산효학원대학교 설립자.총장,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성경에 의하면 가족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이다. 가족의 첫 번째 관계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였다. 창조주와 피조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첫 번째 관계였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첫 번째 창조된 사람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배우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과의 교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아담은 죄가 없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다른 관계가 필요했다.

 

사람은 친밀한 인간관계가 필요한 존재로 창조되었고 그 첫 구성체가 가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경천사상에 근거하여 하늘()의 선물로 본다. 가족을 하늘과 결부시키는 이유는 사회 기능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가족이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많은 남녀 간의 만남 중에서 하나의 부부로 맺어진 관계를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 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부모-자녀의 관계를 나타낼 때,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이런 말들을 보면 가족은 역사와 사회를 초월하는 하늘()로 맺어진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꿈과 미래를 포기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어릴 때 잃어버린 부모를 만나기 위해 일평생 찾아 헤매는 자녀를 볼 때,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진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자발적 희생과 상호 의존의 관계야 말로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가족이 주는 정서적 매력 때문에 이윤추구를 생명으로 하는 기업에서도 가족경영을 내세우고, 가족 마케팅 등을 추구한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가족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인간본성에 내재한 선한 양심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적 동기들이 너무나 많다.

 

유교적 가족 개념에서는 가족의 범위는 생물학적인 부모와 그 자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유교적 전통의 가족은 혈연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정서적 공동체이기보다 가족이나 가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의 공동체이다. 아들의 자손은 혈통 개념에 포함시키지만 딸의 자손은 배제하는 등의 방식을 살펴보면 유교에서 가족 개념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


현대의 가족은 기능적인 면에서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가족 내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대의 거의 모든 생산은 가족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노약자 보호가 병원이나 복지 기관으로 이전되었고 아이들의 양육도 마찬가지로 가족 밖에서 이루어진다. 경제적 가치가 지배하는 가족의 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평가된다. 자녀교육은 인성교육보다는 어떻게 더 나은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인을 만들 것인가에 모아진다.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의미 있는 여생을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대의 가족은 서구의 자본주의 하에서 생겨난 것이다.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 즉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가되는 차갑고 비정한 세태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의 정()이 있어서 온기가 있고,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전통적인 가족이 가져왔던 긍정적 측면으로의 회복이 절실하다. 다른 사람을 환대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정이다. 기쁜 얼굴로 먼저 손을 내밀어 맞아 주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즐겁다. 환대하고 맞아 주는 것은 돈과 물질의 관계를 넘어설 수 있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실패에 관대하고 패자를 환대해주는 곳이 있다면 바로 가정이다.

 

내 집처럼 편안하다고 하듯이, 가정은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서 든든히 나를 지켜주는 평안과 안식의 소중한 정서적 보루이다. 그러므로 효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전통적 효 개념에서는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에 와서 이러한 부분은 폐기되어 마땅한 것으로 여겨진다. 참된 효(HYO)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쌍방적인 관계이며 상호존중을 밑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