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신문배달 경험과 회복탄력성

김종두(효학박사. 한효총사무총장. 전 국방대/경민대/성산효대학원 교수)

필자는 둘째 누님의 도움으로 서울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길은 열렸지만 이미 입시 기간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 모집하는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신문 광고를 보고 야간 고등학교에 응시했고 합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숙식은 어머니께서 형 공부를 뒷바라지하시기 위해 노량진 달동네에 작은 방을 하나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또 아르바이트를 물색하던 중 반 친구의 도움으로 어느 통신사의 통신문을 배달하는 일도 시작했다. 하지만 버스 차비 정도의 수입밖에는 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노인자제인 아들 3형제를 가르치시기 위해 심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온갖 궂은일을 다 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안타까워 부모님께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고학(苦學)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에 남은 막내 동생이 중학교만 졸업한 채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짓게 됐고, 그 덕에 나는 고등학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는 하숙집을 운영하시겠다고 하시면서 노량진에서 북아현동으로 이사를 하셨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셨다. 방 두 칸에 12명이 숙식을 했던 관계로 집주인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는데 다행이도 집주인이 마음이 좋아 허락을 해준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많은 인원에 대해 밥을 해보신 경험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밥이 익지 않아서 선 밥을 짓게 될 때가 많았고, 하숙생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필자는 하숙생의 숫자가 점점 많아져 방이 비좁게 되면서 할수 없이 독서실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벽에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필자는 매일 야간 수업을 마치면 독서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졸리면 의자를 모아놓고 그 위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다가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신촌에 있는 신문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돌렸다. 필자는 언제나 신문보급소에 맨 먼저 도착하는 것을 습관화했고, 신문 운송차량이 도착하면 보급소 소장님과 함께 신문뭉치를 내리곤 했다. 대략 4시 반쯤부터 6시까지 신촌의 이대 입구에서 모래내까지 220부 가량 신문을 돌렸다. 배달을 마치고 나면 태권도 도장에 가서 한 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와 아침밥을 먹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새벽부터 고생하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하시면서 신문 돌리는 일을 그만두라고 거듭 말씀하셨지만, 필자는 재미도 있었고 어머니께 경제적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일을 계속했다. 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 다른 동료들은 구보하는데 많이 힘들어 했지만, 필자는 힘들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이는 아마도 신문배달에서 단련된 체력 강화 덕분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당시 신문보급소에서 받은 첫 월급을 어머니께 옷을 사드리는 데 썼다. 솜으로 누벼 만든 조끼형 겨울 겉옷이었는데, 어머니께서 몹시 기뻐하셨다.

어머니는 “네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왜 어미의 옷을 사왔냐?!”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때 나의 기쁨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어머니께서는 늘 그 옷을 입고 계셨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비록 내가 하기에 힘들거나 벅찬 일일지라도, 그런 일을 거뜬히 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은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다. 땅에 떨어트리면 깨어지는 유리공이 아니라 튀어 오르는 고무공과 같은 탄력의 에너지를 말한다.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를 기반으로 계속 공부를 하면서 대령으로 진급할 수 있는 힘은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것을 즐거움과 도리로 생각했던 효심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작성일 : 2011.8.1.)

☞ 출처 : 『효 러다임의 현대적 해석(명문당, 2016.3.2.)』 p.87, 저자사례②